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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이슈

트위스트 김, 청바지를 즐겨입던 그.. 각종 루머에 시달려야 했던 그의 삶.. 향년74세에 별세

by 클스마스jun 2023. 12. 18.

특이한 예명으로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알만한 유명배우가 2010년 4년간의 긴 투병생활을 마치고 향년 74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건강했던 이 배우는 활동 내내 여러 루머에 시달려야했고, 눈에띄게 건강이 악화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요, 사연의 주인공은 트위스트김입니다. 그는 뛰어난 춤솜씨로 국내에 처음 트위스트 춤을 소개하면서 트위스트김 26세에 배우가 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트위스트 김은 영화동경서 온 사나이로 데뷔합니다 이라는 예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엄앵란과 신성일과 같은 톱스타들과 함께 영화맨발의 청춘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스타가 된 그는 잃어버린 태양수사반장 트위스트김, 동경아리랑등에 15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 뛰어난 춤솜씨와 재치있는 캐릭터로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예능에도 출연하여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는데요

적지 않은 나이인 66세까지 수사반장 트위스트 김의 주연으로 출연하던 그는 이 작품을 끝으로 배우 생활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2002년 트위스김은 황당한 송승헌 친자설에 휘말립니다. 어느 날 긴 하관이나 인상이 닮았다는 이유로 송승헌의 친자가 트위스트김이라는 소문이 돌게 되었는데요,

 

워낙 황당한 루머로 송승헌 측은 루머를 무시했지만 트위스트김은 “그런 여자가 한둘인가? 내가 바람을 워낙 많이 폈어야지” “나하고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연이 있었다면 알 수 있겠죠” 라는등의 발언을 하게됩니다 송승헌이 아들이 맞냐는 질문에는 어허, 참 어려운 질문인데…” 등 묘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고 송승헌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어요. 처음에 S군으로 기사가 나왔을 때는 ‘이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실명까지 거론된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나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나도는 것은 공인으로서 감당할 수 있지만, 부모님이 나 때문에 욕보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처음으로 연예인이 된 것을 후회했습니다”라며 불편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송승헌의 친부 역시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며 분통을 터트리며 트위스트김을 고소하기에 이르는데요, 고소를 당한 트위스트김은 송승헌 가족에게 사과를 전했고 다행히 송승헌의 친부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전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3년, 그의 나이 71세에 트위스트김은 또다시 뉴스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바로 그의 예명인 트위스트김이라는 이름을 따서 음란 사이트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는 실제 이 사이트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만들었거나 관련이 있다고 오해했다고 하는데요,

트위스트김은 사이트 운영자와 포털업체 등 20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김씨는 소장에서 “음란 사이트 운영자들은 ‘트위스트 김’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음란물을 게시했고, 포털업체들은 검색창에 ‘트위스트 김’을 치면 성인사이트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면서 “이로 인해 드라마·영화·광고 출연과 섭외 계약이 잇따라 취소되고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주장했는데요, >당시 트위스트 김은 명예훼손으로 그들을 고소했지만, 관련 법률이 없던 터라 ‘패소’하고 말았는데요 한창 각종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던 그가 ‘음란물 사이트의 운영자’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이 ‘뚝’ 끊겼습니다. 부인 이옥이씨까지 나서 아무리 아니다라고 외쳐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하는데요, 그의 부인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소문이 다 퍼져 일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람들하고 연락도 다 끊기고 정말 힘들었죠.” 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트위스트 김과 그의 부인은 극심한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긴 싸움 끝에 2005년 자신의 예명을 딴 음란사이트 운영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아무개씨 등 운영자 네 명은 김씨에게 위자료 25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받게 됩니다. 재판부는 “김씨의 예명을 도메인 이름으로 쓴 것은 김씨가 음란사이트의 운영자이거나 음란물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김씨의 예명으로부터 음란사이트를 연상하게 함으로써 김씨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무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일도 시작하며 배우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려던 그때, 그에게 불의의 사고가 벌어집니다

2006년 9월, 한 호텔에서 공연을 하다가 넘어져서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킨 것입니다 당시 뒤로 넘어지면서 뒷머리 부분에 큰 상처를 입고 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상태는 심각했으며 1년동안 세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합병증으로 말도 못하고 혼자서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부인 이씨는 당시 “남편이 저렇게 아프고 보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이런 상태를 누구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4년동안 치료를 받던 그는 결국 2010년 향년 74세로 별세하였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는 영화인 협회 누구도 오지 않으며 결국 마지막까지 외면당했는데요, 과거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반발하여 어용영화는 거부했던 그에게 동일 세대 배우들은 그의 행동을 도피성으로 간주하여 사실상 제명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들은 “아버님이 4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하셨는데 동료 배우들 중 사실 그동안 한분도 문병 온 적이 없었다. 정말 사회 자체가 냉정하다고 하지만 연예계 쪽이 더 냉정한 것 같다”고 밝혔는데요, “어제도 오늘도 동료 배우들은 아무도 안왔다. 내 기억에는 그렇다. 중견배우 김동현씨만 잠시 왔다 가셨고 몇 분에게 조화만 받았다”면서 “사실 특별히 연락이 온 것도 없었다. 그냥 모두 바빠서 못왔던 거라고 마음 편하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생전 청바지를 좋아하던 그는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청바지를 입혀 화장을 시켜달라는 말대로 청바지를 입은 채 입관했다고 합니다. 특히 운구를 들 사람조차 없어 옆에 있던 일부 취재진까지 동원돼 운구를 옮겨야했고 고인의 아들은 도움을 준 취재진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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