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생활을 은퇴한 뒤 인명구조사로 활동하며 수천명의 목숨을 구한 유명배우의 사연이 재조명되며 시청자들을 감동에 빠트렸는데요,
현재까지 이 배우가 구한 사람이 무려 2000여명이 된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배우 정동남입니다.
1971년 스턴트 단역 배우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정동남은 차츰 정극 드라마에 출연하며 90년 초 ‘서울 뚝배기’로 얼굴을 알렸는데요,
연기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재간둥이로 소문날 만큼 마이크를 잡으면 전문 MC를 능가할 입담으로 여러 방송에서 다재다능한 끼를 분출했습니다.
최근에는 MBN ‘보이스트롯’에 출연하여 뛰어난 노래실력과 특유의 익살 코멘트로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한편 배우로서의 커리어보다 미간의 정중앙에 있는 큰 점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어린 세대들에게는 차력 아저씨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차력을 하는 줄 알았지만 정동남은 실제로 엄청나게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검도 7단, 태권도7단, 대한합기도 공인8단, 대한합기도 시범단장, 수상안전연합회 중앙구조본부장, 경찰특공대 대테러 사범 및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안전관리대책기획단 자문위원장, 환경처산하 자연보호중앙회 구조본부장, 중앙 119구조단 명예대장 등등의 직함을 갖고 있다는 그는 국제연합이 지정한 국제구급구조 교육전문기관 지도자 교육까지 이수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는 최근 연예계 활동보다는 세월호 침몰사고등과 같은 각종 국내외 재해와 참사현장에 나타나 구호활동을 벌여 인간119란 닉네임까지 붙었습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침몰사고, 태풍 루사와 매미 수해 등의 국내 재해 뿐만 아니라 태국 쓰나미, 쓰촨성 대지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등등 국외의 수많은 참사현장에도 등장했는데요,
이러한 공로로 미국 NTSB 표창, 국가안전관련공로 대통령표창, 국민 훈장 동백장, 좋은 한국인 대, 국가안전관련공로 대통령표창,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본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정동남은 배우로 데뷔한 뒤 전혀 다른 방향의 일에 몰두하며 그 계기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냈는데요,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50여년 전 제가 갓 스무살 무렵 남동생이 한강에 빠져 사망한 일이 있었어요. 황망한 가운데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해 쥐어준 뒤에야 시신을 찾았는데 그게 두고 두고 가슴속 한으로 남았죠. 인명을 구하려면 돈보다 무조건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제 신조가 됐어요”라고 계기를 밝혔습니다.
1960년 당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통학하던 시절, 그의 친동생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안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사과상자를 주워다 널판지로 얼기설기 관을 짜서 아버지와 단둘이 동생을 떠나보냈다”고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정동남은 초등학교때부터 계속 수영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결국 배우지 않고 물놀이를 하러 나간 동생의 비참한 소식이 한이되어 물에 빠진 사람을 다 건져야겠다고 마음 먹은 뒤 구조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정동남은 “직접 내 손으로 시신 수습한 것만 580여구가 되고 살린 사람이 2000여명 된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그는 가장 기억의 남는 구조현장으로는 여성 생존자를 헬기로 구조하는 과정에서 속옷이 그대로 생중계된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건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엉덩이와 허리까지 밧줄을 묶어야 할 매뉴얼을 무시하고 어깨에만 구조밧줄을 묶어 끌어올리는 바람에 구조과정에서 허리가 이완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고 들었어요. 워낙 다급한 상황이다보니 그런 실수가 생겼겠지만 그 장면은 사고 현장을 갈 때마다 늘 한번씩 되새김질을 하게되는 반면교사가 됐어요”라며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더욱 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만 구조 작업을 놓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돌이켜 보면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지만 제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중단할 수 없었어요. 또 생계를 위해서라거나 누군가에게 보답을 받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어서 오히려 더 큰 보람으로 남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는데요,
이어 “봉사활동이라는 본래 목적이 훼손되는 순간 원래 의미는 퇴색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사고를 당해 생사를 모르는 유족들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어느 순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생업을 포기하고 현장으로 달려가게 되더라고요”라고 밝혀 듣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고희의 나이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구조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그는 끝없는 열정을 쏟아내는 비법에 대해서는 “고희란 건 옛말이고, 저는 지금껏 살면서 나이를 의식해본 일이 없어요. 아직도 차력술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콧바람도 쌩쌩 잘 나옵니다. 제 열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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